국내선교칼럼

[이론과 실천이 올바로 겸비된 영성운동]-기독교신문

by 관리자 posted Feb 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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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운동을 현장에서 지도하고 있는 박화양목사는 “영성운동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이지,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한국교회 교인들은 영성운동을 통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로 알고, 자신의 영적성숙과 내적성장을 가져와야 한다”고 평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영성운동을 설명하기도 했다. 



■ [혼란한 교회 영성운동 2] 

21세기를 맞은 한국교회는 영성운동에 대한 중요성을 그 어느때 보다도 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 교인들이 영적으로 메말라 있다는 반증이며, 교회가 침체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교인들과 목회자 그리고 일반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일부교회와 기도원 그리고 영성단체에서 혼란한 사회현상과 맞물려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일부 목회자와 기도원 원장들이 영성운동이 교회부흥과 교인들의 정신적 치유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는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기복적인 영성운동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평양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처음 일어난 영성운동은 당시 혼탁한 사회를 깨우치기 위한 도덕적 회개운동에 바탕을 두고 일어났기 때문에 교인들과 일반인들로부터 공감을 얻어 성공 할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 또한 70년대 순복음 계열을 중심으로 일어난 부흥운동 또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가 영성운동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기복적인 신앙에 바탕을 두고 영성운동을 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영성운동가들의 주장이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을 주도하여 일부 목회자들로부터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한 목회자는 “21세기는 한마디로 영성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운동이 교인들과 목회자들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복적인 신앙에 너무 치우쳐 일부 목회자와 기도원 원장 그리고 영성운동 관계자들이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면서 “올바른 영성운동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고, 기독교의 본질인 생명을 올바로 깨닫는데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이를 위해서 노력하고, 교회지도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교인들을 지도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일부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들은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 한국교회의 건강한 발전과 교인들의 영적성숙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더욱이 영성운동을 주도하는 일부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 그리고 영성운동 관계자들이 영성운동에 대한 기초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영성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부 단체에서는 영성운동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고,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영성운동가로 인해 건강하게 영성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영성운동가와 단체들이 오해를 사서 곤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영성운동은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 사이비종교가들의 전유물로 전락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래서 일부 영성단체는 영성운동을 바르게 전달하겠다는 목적 아래, 영성단체 협의회 구성을 서두르고 있으며, 신학적인 정립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협의회 구성에 직접 가담하고 있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영성운동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고,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윤리적·도덕적인 관점에서 영성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사업적으로 이용되어 이단·사이비종교가들의 점유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영성운동을 주도하는 목회자 및 기도원 원장들은 바른 영성운동을 펼쳐, 영성운동 본래의 목적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영성운동의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영성운동은 한국교회의 부흥에 크게 기여했으며, 교회가 성장하면서 일부목회자와 기도원들이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영성운동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켰다. 70년대 중반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성령운동과 영성운동은 한국교회 부흥에 대한 불을 지폈으며, 이때 한국교회는 급성장했다. 이런 과거를 경험한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영성운동과 성령운동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 영성은 ‘은혜와 자유’ 강조 

오늘날 개신교 영성의 뿌리는 루터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루터의 영성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자신이 체험한 자유에 초점을 두고 있다. 블래들리 홀트박사(아우구스부르그대학, ‘기독교 영성사’ 저자)는 루터가 가톨릭 영적 전통의 일부를 비판하고 평신도, 성경, 그리고 교회의 경건한 행동에 반대되는 세속적인 행위를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을 통해 개신교 영성은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태도, 즉 ‘복음’을 강조한다. 바울이 말한 복음을 영적 전통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 영성은 부흥회를 통한 ‘영성’으로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개신교 영성을 더욱 명확히 알고자 한다면 동방교회와 가톨릭의 영성에 대해 비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동방교회의 영성은 어떠한가. 기독교 역사를 통해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동방교회는 역사적으로 콘스탄티노플, 지금은 이스탄불이라 불리는 곳을 중심으로 했다. 동방신학은 삼위일체론을 강력히 신봉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시하는 동방 정교회의 영성은 ‘예수기도’와 ‘이콘’, ‘침묵’을 강조한다. 

‘예수기도’의 기본적 사상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으로 ‘마음의 기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기도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일이 생활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의 기도’를 계속 연습하다보면 어느 순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기도를 되풀이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사용되는 예수기도의 보편적인 형태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동방교회에서는 ‘아무런 생각 없이 드리는 기도’ 즉 말이나 심상없이 드리는 기도를 추구한다. 

동방교회에서는 ‘이콘’ 즉 성상과 성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형태를 특정한 양식으로 눈에 보이게 표현하는 ‘이콘’ 사용은 정교회의 특징적인 영적, 신학적 표현이다. ‘이콘’ 사용이 하나님을 물질적인 대상으로 표현하고 숭배하는 것으로 비칠 지는 모르지만, 성화나 성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화 안에 표현된 위격을 존경하는 것이라는 것이 한국 정교회 측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가톨릭의 영성운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성수동 성당의 김기화신부는 “기독교 영성이란 우리 삶 전체 속에 나타나는 신앙생활”이라고 전제하고, 그러한 의미에서 가톨릭 영성을 한마디로 축약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영성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가톨릭 영성은 새로운 형태의 교단 형성을 통한 수도원운동과 신비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도와 묵상생활에 전념한 신비가 중 하나인 클레르보의 버나드는 방대한 수도원을 관리하고, 거룩한 생활의 본보기이면서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키기 위한 신적 사랑을 보여준 예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의 삶에서 ‘겸손’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별히 가톨릭 영성과 신학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탁발교단의 설립이다. 도미니크 수도회, 프란치스코 수도회, 갈멜회, 어거스틴 수도회 등은 한 수도원 안에 머물면서 공동기도와 개인기도를 하는 제한된 생활 대신 ‘세상의 봉사’를 강조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세운 예수회는 급진적 수도원으로, 탁발교단에 한발 앞서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여행하겠다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 

‘성장’보다는 ‘성숙’에 초점 맞춰야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영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영성에 대한 정의조차 너무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목회자들 스스로, 또는 교인들이 많은 혼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를 상업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우선 영성에 대한 이해가 목회자와 신학자, 때로는 부흥사들이 주장하는 바가 공통점도 있으며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이들이 공통점으로 말하고 있는 영성운동의 정의는 “영성훈련이란 성령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를 실행해 나가는 과정이며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과정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말씀에 근거한 영성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흥사들의 경우는 영성운동은 곧 부흥운동이요 교회성장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고 있다. 

즉 부흥사들의 경우는 교회를 성장시키고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는 등 은사를 받는 부분에만 너무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성령을 받으면 이러한 이적들이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기적과 이적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다 보니 자연히 삶의 변화라는 측면을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과 관련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을 지낸 김정일목사는 “영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영성운동을 교회성장의 돌파구로 삼아보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신비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하고 “목회자들 스스로 하나님의 종으로서 영성운동을 통해 자기 개발을 하고 올바른 말씀 전달을 통해 교인들을 성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목사는 “영성운동의 문제점은 목회자가 자기 개발은 하지 않고 수단화하려는 데서 문제점이 생긴다”고 말하고 “영성이 충만한 사람은 바른 봉사와 교육 등 후속적으로 열매가 맺어져야 올바른 영성”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박형렬목사(기독교치유부흥선교협의회)도 “영성이라는 문제가 신학적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부 교단이나 목회자들이 이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측면으로만 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이는 곧 목회현장과 신학교와 괴리감의 문제로 연결된다고 말하고 최근에 영성신학이라는 책들이 나오고 있으므로 과감히 신학교 커리큘럼 안에 정규과목으로 삽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성운동이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아직도 일부에서는 영성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며 경건이라는 말로 대치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영성운동이 관계성의 문제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으로 거듭난 개인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맞게 살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성숙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측면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영성운동이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도구로 사용되어질 것이 아니라 성숙이라는 측면에까지 이어져야 올바른 영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영성에 대해 분명히 이해해야할 부분중의 하나는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정립된 후에 생활영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지금 한국교회가 실천적인 면의 부족으로 인해 윤리의식 부재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론과 실천이 올바로 겸비된 영성운동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것이다. 

/유달상부장·윤용상차장·성민혜기자 공동취재·집필 
(1598호. 200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