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빈민가 케냐 키베라를 가다] 가난·에이즈… 희망마저 사치인 땅
[2008.08.27 22:18] (국민일보)
케냐 나이로비 중심가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키베라는 사람의 접근을 거부했다. 아니 기자가 거부했다는 표현이 맞다. 쓰레기를 태우는 메케한 냄새, 다 쓰러져 가는 양철 지붕 주택들, 그 사이로 악취를 풍기며 흐르는 시궁창…. 키베라 입구에 도착한 기자는 잠시 적응하기 위해 숨을 돌려야 했다. 키베라는 세계 3대 슬럼가 중 한 곳이다.
아프리카 전체 슬럼가 중 남아프리카공화국 슬럼가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이곳은 상하수도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주민들은 생활쓰레기와 음식물을 모두 길가 있는 시궁창에 갖다 버린다. 검회색 하수가 마을 아래쪽으로 유유히 흘러가는데 수많은 비닐과 음식물 찌꺼기, 인분 등이 섞여 파리가 들끓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냉동 장치가 없는 정육점과 쇠창살로 막힌 구멍가게, 검댕이 덕지덕지 붙은 석쇠에 양머리를 굽는 간이식당 등에선 빠른 비트의 레게 음악이 흘러나왔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이들이 임시로 정착하기 시작한 키베라는 가난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눌러앉은 사람들의 영구 거주지가 되면서 슬럼가로 변한 지 오래다.
키베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장 경찰과 동행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가 출입시간인데 그 밖의 시간은 경찰도 출입을 꺼릴 정도로 범죄 발생 빈도가 높다. 범죄자들이 키베라에 몸을 숨기면 잡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 미로처럼 복잡하다. 대부분의 집은 녹슨 양철판과 나무, 흙으로 만들었다. 10㎡도 안 되는 공간에서 다수의 가족이 모여 산다. 집에는 상하수도 시설과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공공시설에서 요금을 내야 사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취임 후 처음 방문지로 키베라를 찾아 주거 개선 사업을 위해 10만달러를 기부했다.
키베라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질퍽한 시궁창을 놀이터 삼아 뛰어다닌다. 불결한 환경 탓에 5세 미만 어린이 사망률은 신생아 1000명당 125명 수준이다. 식수도 마땅치 않아 지하수나 물탱크에 저장해놓은 물을 사 먹는다. 물을 긷는 일은 여성의 몫이다. 만나는 어린이들에게 "하우 아 유?(How are you?)"라고 말을 건네면 '파인'(Fine)이라고 대답하는 아이는 없다.
식수를 팔고 있는 리자디 볼로마자리(28)씨는 "물 20ℓ에 3실링(약 45원)씩 받고 있다"면서 "물을 받기 위해선 물통을 준비해 차례를 기다려야 받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수라고 해 봐야 지하수인데 시궁창 물이 스며들 것을 생각하면 마실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공공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있지만 불결하긴 마찬가지다.
키베라 언덕 꼭대기에는 케냐 보건부와 유럽연합(EU), 미국국제개발처(USAID), 국제기아대책기구(FHI) 등이 지원하고 있는 실랑가 의무실이 있다. 이곳에선 결핵 치료와 에이즈 상담, 종양 치료 등을 하고 있는데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의무실의 한 관계자는 "케냐의 기대수명은 1990년대 들어 HIV 바이러스와 에이즈 때문에 51세로 뚝 떨어졌으며, 현재 500명 이상이 매일 목숨을 잃고 있다"면서 "감염자가 100만명을 넘자 2000년부터 HIV 바이러스와 에이즈를 국가 재앙으로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심각한 문제는 에이즈가 경제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할 계층인 15∼45세에 치명타를 끼친다는 것. 가족 수입원 하락과 구성원 사망을 겪으면서 가정 해체 등 사회 기반이 흔들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곳을 조사한 굿피플 김주봉 부회장은 "에이즈가 모유를 통해 아기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분유 보급 사업을 적극 펼치겠다"고 말했다.
키베라=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세계 3대 빈민가 케냐 키베라를 가다] “빈곤 해결책은 오직 복음”
[2008.08.27 22:19]
아무리 척박한 환경의 빈민가라 할지라도 희망은 있었다. 20년간 키베라에서 미션아웃리치교회를 맡아온 니콜라스 뮬리아 목사(55·사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빈민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 후 교육, 보건 등 사회 시스템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과 식수, 에이즈입니다. 인구가 계속 유입되면서 어린이들이 학교에 진학해야 하지만 초등학교가 600명밖에 받아들이지 못해요." 뮬리아 목사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우선 교육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시설 확충과 실력 있는 교사 보강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식수 문제 또한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입니다. 수도시설이 안돼 있어 보건에 치명적 문제가 있어요. 케냐 정부가 지원하고 있지만 워낙 많은 슬럼가가 있다 보니 지원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교육 식수 문제에 이어 에이즈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곳의 많은 여성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에이즈에 걸리고 아기를 낳으면 에이즈 환자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요."
그는 키베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오직 복음밖에 없다며 한국 교회의 관심과 지원을 강조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습니다. 그분은 비전이고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50, 60년대 비슷한 환경을 거쳤지만 극복해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국 교회도 서방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아 삶을 포기했던 영혼들을 보살폈듯 우리도 적극 도와주길 바랍니다." 현재 키베라에는 300개의 작은 교회가 사역을 펼치고 있다.
백상현 기자